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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586)세대가 욕을 먹는 이유

category 정보│기타│구매 리뷰 2018. 5. 24. 14:02


 

386세대가 욕을 먹는 이유

 

 



1.  산업화의 혜택을 보기 시작한 세대

 

먼저 우리나라의 역사를 둘로 구분해본다.

단군 ~ 1960년까지  - 암울,  배고픔 그자체

1961 ~ 현재

오죽하면 물고기를 '물고기'라 부르겠나. 물고기라는 말도 헤엄치는 고기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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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5.16 혁명이 1961년 이었고 김재규의 10.26이 1979였다.(18년 재임) 따라서 386세대가 성인이 되던 1980년 부터는 한반도 역사상 유례없던 산업화의 기틀로 열매가 맺히던 시기다. 5000년 역사에 처음 있던 일이다. 첫 386이 성인이 된 년도가 1980년이다. 바로 그 수확의 주인공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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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먹고 살만하니 엉뚱한 상상

 

386이 중, 고딩이던 1960년대에는 오래 지속된 베트남전의 피로로 인해 히피문화가 생긴다. 사랑과 평화만을 외치고 일도 안하고 마약이나 하던 사람들에게 채워진 완장이 히피문화다. 이는 베트남전 종전후에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전쟁으로 얻어진 평화로 히피가 가능했다는걸 본인들만 몰랐다. 스탈린이나 마오저뚱 밑에서 히피가 가능이나 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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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히피문화는 우리나라의 월남파병(1964~1973)으로 국내에도 전염된다. 당시 장발과 통기타로 대변되던 사람들이다. 그 시절의 중, 고딩이 바로 386세대다. 무조건 적인 평화징징이 떼쓰기가 아마 이때 생긴듯하다. 당시의 노랫말이나 분위기가 암울한 군사정권을 비판한거라고? 그럴수도 있지만 히피문화 자체가 오래된것,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기조다. 깨시민이 아니란 말이다.

 

양키히키나 김치히키나 그 반석을 세워준 것이 산업화요 자유주의요 경쟁과 국가안보라는 것을 모른다. 오직 감성에만 젖어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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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6.25후 첫 경제적 시련

 

노태우가 물러나고 김영삼 김대중의 가위바위보로 탄생한 김영삼 문민정부는 IMF를 초래한다. 이 때가 1997년 11월이다.

 

386의 마지막 학번인 89학번 예비역 병장도 이미 취업전선에서 물러난 시절이다. 386은 정말 운좋게 빗겨가고 이후 90년대 초반 학번부터 사회진출이 정말로 힘들어졌다.IMF에서 386의 책임은 없다만 운이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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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도 '학력고사'니 '3당 4락'(3시간 자면 붙고 4시간 자면 낙방)이니 나름의 경쟁은 치열했다. 하지만 콩나물시루가 콩나물이 자라는걸 다 받아줄만큼 경제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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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학생데모O  민주화운동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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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절 대학근처에서는 한달에 두어번 씩 최루탄 냄새가 진동했다. 투구를 쓴 경찰과 머리띠를 두른 대학생이 나의 각인된 장면속에 늘 있다. 90년대 초반까지 학생운동은 지속되었다. 80년대 후반 학번이 경찰에 수배되고 후배 자취집에 기거하는 것은 일종의 트로피 같은 거였다. 철모르고 이에 부화뇌동한 후배들은 강의와 시험을 제낄수 있는 옵션인 시위에 나서다가 발길을 돌려 막걸리 주전자 잡는게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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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평화로 시작된 히피는 결국 게으름과 폭력으로 마무리 되었고 화염병과 최루탄은 늘상 막걸리 친구인 김치와 깍두기 안주가 되어 있었다. 물론 당시 정권의 강압에 의연히 맞서고자 한

학생들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게으름과 나태, 사회적인불만과 불평을 운동권학생들과 어울려 목적없이 폭력과 욕설을 보태던 떨거지들이 더 많았다고 본다.

 

그야말로 고작 스무살.... 작년까지 고등학교 교실에서 도시락 까먹던 애들이 얼마나 한이 맺혔길래 혈안이 되어 혈죽을 세우며 화염병을 든단 말이냐? 산업화의 첫 수확을 거두는 세대가 할 짓이 아니었다. 이제는 완벽히 그시절을 민주화 운동의 역사라고만 떠드니 참으로 기가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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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전한 꿀

 

386이라고 해서 어찌 땅짚고 헤엄치기만 했으랴 IMF때 생긴 신조어인 '황태자', '명퇴', '사오정', '오륙도'의 주인공에는 386도 끼어있고 오늘의 자영업대란의 주연이 바로 386이다. 하지만 그에 견줄 386의 꿀이 있다. 바로 부동산이다. 우리나라(강남논외) 부동산 가격의 폭등시점과 386의 사회진출 시기와 대충 맞아 떨어진다. 현재의 386의 '부'는 대부분 부동산에서 온다는 뜻이다.


자본주의와 미제를 욕하던 세대가 자본주의와 미제의 혜택을 가장 진하게 맛보는 아이러니가 오늘도 계속된다. 유산을 물려받지 않아도 '재산형성' 되도록 '재형저축'이라는 것도 있었다. 거의 비과세인데다가 이율이 20%에 육박한 상품으로

 386의 사회진출과 부동산 취득에 크게 한몫했다. 지금 그런 이율의 저축상품이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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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전한 히피사상

 

다같이 잘먹고 잘사는 경제민주화니 한민족의 핏줄을 잊지 말자는 통일대업이니 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넘쳐난다. 그것은 선거결과에도 고스란히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의당  50대인 현 386세대가 우파적인 시각을 갖지 못하고 철모르는 철부지마냥 종북세력의 밥이요 간식이 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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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버릴수는 없는 카드

 

386세대가 숫자상으로는 1000만명에 육박한다. 지금으로 봐서는 386이 죽어서 흙이 될때가 되면 김정은의 아들이 대한민국을 다스릴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8.마치며

 

이 글은 386과 이간질을 시키기 위한 글이 아니다. 우리나라 땅덩이에서 자급자족만 할 경우 담을수 있는 인구가 1000만 정도이다. 수출과 제조업만이 살길이라는 구호가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 수출과 제조업은 투자와 소비가 필수고 외교와 선린관계는 목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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